Februay
2월
[제작스케치(구)]
빛의 제국
국립극단 이정민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귀환하라.’”
(재)국립극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대 작가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빛의 제국>을 오는 3월 선보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1996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 단숨에 한국 소설계의 젊은 지성으로 떠오른 김영하 작가는 『빛의 제국』에서 21년간 서울에서 살아 온 잊혀진 북한 간첩 ‘김기영’이 어느 날 귀환명령을 받고 펼쳐지는 24시간을 그렸다. 21년 전 남파된 북한간첩의 시점에서 서울의 모습을 담은 김영하 작가는 발간 당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변화와 그 안에서 개인의 삶’에 소설의 지향점을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 사회를 재조명한 소설 『빛의 제국』은 2007년 만해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10여 개 국가에 출판되었다. 프랑스의 중견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 Arthur NAUZYCIEL은 이번 작품에서 70년간의 분단 상황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가 놓쳐버렸을지 모르는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이방인의 관점에서 담아내는 한편,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기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을 대표하는 두 연극단체의 의미 있는 협업
2016년은 한국과 프랑스의 양국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양국 수교가 시작 된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 국가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지정하고,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2016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로 정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한다.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인증사업으로 선정된 이번 <빛의 제국>은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한국 현대소설의 무대화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작품은 2013년부터 국제공동제작을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왔다. 2013년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명동예술극장(현 국립극단)과 함께 김영하 작가의 『빛의 제국』을 무대화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원작자 및 한국 제작진을 만났다. 2015년에는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는 프랑스의 극작가 발레리 므레장Valerie MREJEN이 1차 초고를 완성하고, 연출이 한국을 방문하여 오디션을 직접 진행했다.
본격적인 공동제작 전 사전 파트너십 구축 및 연출가의 작품세계 소개를 위해, 국립극단은 지난 해 노지시엘 연출의 <스플렌디즈 Splendid’s>를 초청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렸다. 시대의 반항아이자 세계 3대 부조리 작가로 인정받는 장 주네의 유작을 노지시엘 연출의 미학으로 풍성하게 펼쳐낸 이 작품은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하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환상적인 미장센을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 바 있다. <스플렌디즈 Splendid’s>와는 또 다른 무대를 약속한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은,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한 편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감각적으로 구현해낼 것이다.
영화적 미장센에 능한 프랑스의 현대적 연출
2007년부터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의 예술감독을 역임해 온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은 영화적 상상력과 틀을 깨는 연출기법으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비주얼 아트와 영화를 전공한 후, 그는 샤이요국립극장 부설연극학교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이후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99년 몰리에르와 지오바니 마치아의 희곡을 교묘하게 접합한 <상상병 환자 또는 몰리에르의 침묵>으로 독특한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연출가로 전향했다. 2012년 아비뇽페스티벌에서는 교황청 안뜰 야외공연장에서 깎아지른 듯 한 무대에 갈매기 탈을 쓴 배우들을 등장시킨 파격적인 <갈매기>를 수천 명의 관객들 앞에 선보였다.
미국, 헝가리, 아이슬란드, 일본 등 해외 극장 및 페스티벌과의 활발한 국제협업을 꾸준히 펼쳐온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그 공으로 빌라 메디치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들과는 처음으로 협업을 시도하는 연출은 이번 <빛의 제국>에서도 그만의 남다른 미장센이 결합된 완벽한 무대로 또 한 번 한국 관객들을 놀라게 할 예정이다.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다
<빛의 제국>을 선보일 8명의 배우들은 지난 해 가을, 연출가가 한국을 방문해 직접 진행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다. 개인 인터뷰와 워크숍 형식의 오디션을 통해 노지시엘 연출이 직접 선택한 배우들은 약 140분의 러닝타임동안 때로는 작품 속 인물로, 때로는 배우 자신으로 무대에 선다. 이 작품의 각색을 맡은 발레리 므레장은 인물들이 자신의 기억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소로 ‘녹음실’을 설정했다. 두 개의 스크린이 걸린 녹음실을 배경으로 배우들은 인물로서, 또는 배우 자신으로서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가스파르 유르키에비치 Gaspard YURKIEVICH는 회색톤 의상으로 거대한 세계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개인을 표현하고, 영상 디자이너 피에르-알랭 지로 Pierre-Alain GIRAUD가 합세해 익숙하고도 낯선 서울의 일상을 담아낸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스크린에서는 서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두 세계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져 아름다운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지난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공포에 맞선 존 프락터 역으로 <시련 THE CRUCIBLE>의 전석 매진을 이끈 지현준은 이번 작품에서 단 24시간의 시간동안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반추하는 북한의 잊혀진 간첩 ‘김기영’을 연기한다. 2010년 <광부화가들>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문소리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장마리’ 역을 맡아 설득력 있는 연기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외에도 정승길, 양동탁, 김한, 양영미, 김정훈, 이홍재 등 노련한 중견 배우들과 풋풋한 매력의 신인 배우들은 극중 인물과 배우 스스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이며 소설 원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빛의 제국>을 탄생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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