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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호

[어린이청소년극하는 사람들]

[드라마투르기와 청소년극①] 도전, 청소년극! 고전, 드라마투르그

김옥란

드라마투르기와 청소년극①
도전, 청소년극! 고전, 드라마투르그
  • 드라마투르기와 청소년극 1, 드라마투르그 김옥란

[OOO와 청소년극]
기존 연극 작업에서 익숙했던 연극의 요소라 하더라도 ‘청소년극’에서는 문득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특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000과 청소년극’은 청소년극과 연극의 어떠한 요소 또는 특정 주제를 연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각각의 흩어진 발견들이 맞닿은 줄기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웹진 청파로 373팀

 청소년극은 청소년 주체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청소년 관객을 만난다. 드라마투르그 작업에서도 이 두 가지 사항은 중요한 기준이다. 필자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 제작한 <레슬링 시즌>(2012, 2013),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2015, 2017), <영지>(2019, 2020, 2023), <발가락 육상천재>(2020, 2022), [트랙터](2022), 5편의 공연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다. 재공연까지 포함하면 10편의 공연에 참여한 셈이다.

첫 만남

 맨 처음 <레슬링 시즌>에 참여했던 때가 떠오른다. 낯설었다. 일반적인 제작과정과 다른 점이 많았다. 기획 단계에서 예술교육팀과 회의가 있었고, 연습실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찾아왔다. 청소년 주인공을 무대의 중심에 세운다는 것, 청소년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자주 긴장했다. 인물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청소년들의 일상과 문화를 알아야 하는데,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깨달아야 했다. 예술교육팀과의 만남은 기획회의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던 예술교육 선생님들께 계속 묻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모니터링을 위해 연습실을 찾아온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청소년’은 낯선 대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매번 물었다. 성인 창작자들 또한 이미 10대를 지나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청소년기는 낯설고 자신 없었을까? 세대가 다르다는 불안감도 컸다. 작품마다 새롭게 들어와 있는 감각을 따라잡기 위해 평소에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던 ‘쇼미더머니’도 챙겨보고, 슬라임 유튜브도 찾아봤다. 그럼에도 ASMR 동영상은 여전히 당혹스러웠다.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이제야

 청소년극이 편안해진 것은 최근이다. [트랙터]에서, 그리고 <영지> 세 번째 공연에서야 더 이상 ‘청소년은 누구인가?’ 묻지 않게 되었다. [트랙터]에서 어른들보다 더 현명한 아이들이 말을 걸어온 이후부터이다. [트랙터]는 30분 분량의 짧은 단막극 3편의 연작 공연이다. 한현주 작가의 <7906버스>, 허선혜 작가의 <빵과 텐트>, 나수민 작가의 <하얗고 작은 점>의 3편이 그것이다.
 <7906버스>에는 2년 전 사고로 딸을 잃은 버스기사가 나온다. 딸이 다니던 길의 노선을 매일 운전하는 기사이다. 어느 날 문득 버스에 시동이 꺼지고, 버스를 고치기 위해 잠시 멈춘 사이, 딸과 같은 반 친구였던 아이가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돌려준다. 딸은 ‘방탄 지민 오빠’ 팬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지민 오빠의 생일 축하 광고판을 달기 위해 돈을 모았지만 선생님께 들켜서 못 달고, 다른 친구들에겐 돈을 다 돌려줬지만 딸에게만 돌려주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2년 동안 꼬깃꼬깃 접혀 있었던 지폐가 건네지는 순간, 이 장면을 하기 위해 내가 지금 이 공연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여러 사고는 참사가 거듭되었던 지금 세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우리 모두 고통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에서 비로소 우리가 같은 시간을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청소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영지> 세 번째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지는 더 이상 말괄량이 삐삐도, 마녀도 아니었다. 대상화된 어떤 존재, 낯설고 두려운 어떤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였다. 여기에는 김미란 연출의 질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릴 때 분명 옆에 있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지워진 것처럼 사라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농인 친구들 이야기였다. 지워진, 사라진, 떠나는 아이들에 대한 김미란 연출의 오랜 질문은 ‘영지는 누구인가?’에 대한 오랜 질문에 답이 되었다. 4년만의 재공연에서의 변화였다.
 10년 전 청소년극 장르는 생소했다. 그러나 이제는 민간극단 공연에서도 청소년극 장르는 익숙하다. 청소년극에 대한 그동안의 질문들이 쌓이고, 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이다. 청소년을 더 이상 ‘사건’이 아닌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간들이었다. 청소년극 제작에 참여했던 창작자들, 그리고 극장에서 함께 만났던 관객들의 시간이 쌓여서 가능해진 것들이다.

시도들

 돌이켜 보면, 국립극단 청소년극 공연과 함께 했던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해외 유명 청소년극의 소개, 청소년 관객과 연계된 작품 발굴을 위해 노력했던 ‘청소년극 창작벨트’, 젊은 예술가들의 감각에 개방적이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과정 등은 일반적인 프로덕션에서는 접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소년이그랬다>로 청소년극의 첫 출발을 알렸던 한현주 작가는 <레슬링 시즌>에서도 각색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다시 <7906버스>의 작가로 참여하면서 기성세대와 청소년 세대를 연결하는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햄스터 살인사건>의 허선혜 작가는 <영지>의 세 번의 공연, 그리고 <빵과 텐트>에서 매일매일 변하는 몸, 매번 다른 몸을 만드는 아이의 우화를 들려주었다. 매일매일 변하는 몸, 밀가루를 반죽하듯 새롭게 만들어가는 몸의 주제는 신체적 성장기인 청소년기에 대한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에서 박완서 소설의 각색을 맡았던 김연주 작가는 <발가락 육상천재>에서 경쾌하고 빠른 속도감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온 인어라는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실패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원형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인어라는 판타지는 어린이극에서도 자주 보아왔던 것이지만, 머리는 생선 대가리이고 꼬리는 다리인 역전된 이미지를 통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견고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국립극단 청소년극을 통해서 젊은 창작자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청소년기를 다루는 청소년극의 특성상 청소년극에는 젊은 창작자들의 참여가 많다. 작가, 연출가, 배우는 물론 움직임과 공간 등 스태프적인 영역에서도 그렇다. 주제와 드라마가 있는 공연뿐만 아니라 <죽고 싶지 않아>와 같은 움직임 중심의 공연, <비행소년KW4839>와 같은 공간 실험의 공연 등 청소년극 내부의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10년 동안의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변화이다.

그리고

 서계동 국립극단은 올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3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계동 국립극단을 마감하는 공연은 청소년극 <영지>였다. 원래 <보존과학자>가 마지막 작품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프로덕션 사정으로 조기 종료하고, <영지>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서계동 국립극단은 <3월의 눈>으로 개관했다. 백성희ㆍ장민호 원로배우의 연극으로 극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어린 11살 영지가 극장 문을 닫았다. 영지는, 커튼콜 대신 잔디밭에 나와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 어린이청소년극장의 개관을 기대하며, 영지와 함께 국립극단 빨간 극장들에 이별을 고한다.

[필자 소개]
김옥란 드라마투르그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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