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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메디아> 공연읽기 - 2

국립극단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제의적 카타르시스와 현대성"


<메디아> 공연읽기 - 2. 원전 『메디아』와 국립극단의 <메디아>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17:00
강사 : 김헌(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 ‘메데이아’는 ‘메디아’의 그리스어 발음입니다.
* 본 내용은 강의 녹취록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1부로부터 이어집니다.]




이올코스의 왕자였던 이아손에게는 펠리아스라는 삼촌이 있었는데, 그는 이아손의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아손에게 왕위와 함께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것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었죠. 성인이 되어 왕위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는 이아손에게 펠리아스는 황금양털을 요구했고, 이아손은 황금양털이 있는 콜키스로 갑니다. 콜키스의 공주였던 메디아는 이아손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둘은 고귀한 각자의 열정을 가지고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아손은 왕권을 위해서, 메디아는 사랑을 위해서 말이죠.

메디아는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남동생까지 토막 내 죽이면서 이아손과 함께 황금양털을 가지고 도망칩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지요. 펠리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메디아는 그의 딸들을 불러 연로한 아버지를 젊게 만들어주겠다고 현혹한 후 펠리아스를 토막 내 죽게 만듭니다. 이올코스의 주민들은 메디아의 행동에 경악하여 아이손과 메디아를 추방합니다. 메디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펠리아스에게 정당한 벌을 내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행동한 것이기에 당당하지만, 이아손은 그녀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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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이미 죄로 더럽혀진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이아손은 권력 하에서 메디아를 보살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메디아는 사랑이면 모든 역경을 다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메디아가 두 아들을 죽인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적인 복수 앞에 이아손과 메디아 그 누구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람이 메디아고, 자식까지 죽인 메디아를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만 해대는 사람이 이아손입니다. 사랑이라는 욕망과 권력이라는 욕망 아래에서 아이들만 죄 없이 죽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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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도 이 두 사람과 비슷한 입장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돈과 권력을 위해 일에 몰두하며 아이들과 배우자를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사랑이라는 가치를 위해 모든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나요? 무대 위 사건의 극단적인 면을 살짝만 완화시켜도 우리 삶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메디아는 아닌가, 이아손은 아닌가.

한 가지 토론해보고 싶은 점은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가 해석한 <메디아>의 결말 부분입니다. 원작 <메디아>의 마지막 장면은 기중기 위에서 두 아이의 시체를 안고 아래를 노려보고 있는 메디아와 그 아래에서 분노에 차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아손의 모습입니다. 원작과 오늘의 공연 중 어떤 것이 더욱 극적일까에 대한 토론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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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1. 여러 방면에서 그리스 비극과 메디아를 설명해주셔서 뜻깊었습니다. 원작과는 다르게 마지막에 이아손이 메디아를 죽이는데요, 남성적 폭력성이 여전히 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연출가의 의도는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런 폭력성을 가진 사람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A. 연출자가 의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생각입니다. ‘이아손은 과연 메디아를 죽일 자격이 있는가, 자격이 없다면 폭력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다’라는 것이죠. 단, 에우리피데스의 경우에는 여성적 폭력과 남성적 폭력이 팽배한 가운데 두 아이의 시신을 두고 극을 마무리했습니다. 메디아가 마지막에 죽어버리니까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출가가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답변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신의 격정 끝에 아이를 죽인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라고 하더군요. 하나의 해결책으로 알폴디는 에우리피데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분이 말씀하신 남성적 폭력이라는 생각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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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작품 내내 나오는 코러스들의 존재는 고전적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현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메디아>의 코러스는 구체적으로 코린토스의 여인들이죠. 그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메디아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는 말리기도 합니다. 알폴디는 이 코러스를 매우 독특하게 해석한 것 같습니다. 원래 코러스는 무대 위의 제물을 죽이는 제사장 같은 느낌인데, 알폴디는 코러스를 하나의 역할로서 무대 위에 세운 것 같아 현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코러스들이 메디아를 동정하고 편을 들어주는 편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메디아의 편을 들어주다가도 강하게 비난하고 질투하기도 하더군요. 다양한 심리를 담아내려고 한 시도가 현대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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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고대 그리스 연극은 남자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에우리피데스는 왜 ‘메디아‘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한 비극을 썼을까요?

A. 재밌는 게 관객들과 배우 모두 남자였습니다. 메디아 역할 역시 가면을 쓴 남자가 했고, 작가도 남자였죠. 그렇다면 왜 여성이 주인공인 극을 공연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먼저, 남자들을 모아놓고 여자를 조심하라는 교육적 목적으로 그랬다는 해석입니다.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남자들이 여자 심리를 너무 모르니까 ‘여자들은 이런 존재야’라는 것을 가르치는 차원에서 그랬다는 조금은 유치한 해석이죠. 또 다른 해석은 세상에는 남자들끼리의 대립도 있지만 남녀의 대립이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런 극이 많다는 해석입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다른 작가들보다 더 많이 썼습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쟁에 패배한 국가의 여성들의 불행을 보여주고 있죠. 에우리피데스가 제기한 젠더 문제는 남성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됩니다. ‘진정한 여성해방이 곧 진정한 남성해방이다’라는 페미니즘 구호가 있는데요, 젠더의 문제가 단순히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라는 개념인 것이죠. 에우리피데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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