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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잿빛 반딧불이<적도 아래의 맥베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조회 1773

 
잿빛 반딧불이<적도 아래의 맥베스>
 
 ‘2010 서울연극올림픽’ 국내 공식 초청작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공연했던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제목만 얼핏 들어보면 매우 이국적인 향수가 스며 나오는데 사실은 주인공들이 다름 아닌 과거의 한국인들이다. 포스터에서부터 온갖 심연을 가득 베어 물은 한사람의 흑백사진과 함께 이 연극이 결코 가벼운 주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작품을 극작한 작가 정의신은 재일교포 2세로 대표작인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요미우리 연극상 대상과 최우수작품상 및 우수연출상 등 한일 양국 간에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이번 <적도 아래에 맥베스>에서도 특유의 휴머니티와 재치로 극을 전개한다.

 일단 제목에서 ‘맥베스’라는 단어가 붙은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비극 제목이자 그 극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맥베스는 왕이 되려는 끝없는 욕망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인물임을 알고 작품에 임한다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조선이 일본치하에 속국으로 있을 당시 태평양전쟁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을 했던 조선인 군속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제목 <적도 아래의 맥베스>란 전쟁당시 적도 부근 태국 미얀마에 위치한 일본의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던 군속들이 맥베스와 같다고 한데 있다. 일본군은 군사적 목적으로 ‘태면철도‘를 건설하는데 그곳에 포로들을 이용하여 노역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을 감시하는 군속들을 맥베스와 비교하여 침울하고 비극적인 그들의 삶을 역사적 사실로써 알리고자 하는 노력에 있다.
 조선인 군속과 맥베스 둘 다 각각 일본인과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 사회적 위치를 상승하려다 파멸당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그 둘을 병치하기엔 이질적인 느낌이 있다. 맥베스는 오직 자신의 탐욕과 욕심 때문에 행한 일이지만 당시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친일이라는 비모범적임에도 불구하고 협박과도 같은 강제성이 짙은 상황과 국가보다 중요한 생존본능에 모든 것이 정당화 되었다. 파멸당하는 과정에서도 자기반성에 대한 성찰에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쨌든 작가는 남성에게 이 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책임을 던져주었고 형무소의 반은 맥베스 이야기로 제목에 충실한 연극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둘러 싼 문제에서 사실상 물러나게 된다. 그래서 육상운송로의 확충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등지 각 근처에 철도를 다니게 할 수 있는 다리를 건설하게 되었다. 그 중 이른바 '죽음의 철도‘라 불리는 ’태면철도’ 공사가 매우 악명이 높았으며, 그 건설 현장에 전쟁포로들이 투입되면서 고된 노역으로 수많은 희생을 야기 시켰다. 이 작품은 그 시절 일본의 포로감시원을 하던 실존인물인 ‘이학래‘씨의 증언을 토대로 내용을 전개한 것이다. 그리고 극에서도 인터뷰 형식을 빌려 ’이학래‘씨를 모태로 탄생한 유일한 생존자인 춘길이 미래에 나이가 들어 등장하여 당시 생활을 이야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극단 미추의 대표자이자 <적도 아래의 맥베스>연출가 손진책씨는 연극적 장치를 가급적 배제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극성보다 역사적 사실과 증언 위주로 극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철저하게 외면한 사회의 책임을 묻는 일종의 고발로도 볼 수 있다.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의 매일 사형의 두려움에서 시달려야 하는 B,C급 전범들로 오명을 쓴 이들의 과거 이야기만으로 그 사실을 알리는 데에도 충분하지 않나 싶지만 현시대로 돌아와 인터뷰하고 촬영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극으로 그리는 필요성까지 보이는 것은 조금 산만한 면이 없지 않아 보였다. 사건에 대한 효율적인 전달 면에서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형무소 안에서의 비극성은 반감되는 느낌이었고, 촬영 에피소드에 관련한 단순한 갈등과 지루한 대사 등 때문에 몰입도 역시 낮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모든 사람이 이 연극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연극을 통해 역사적 재조명을 모두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누군가가 정말 다큐멘터리든 뭐든 범용적인 효과가 큰 TV로의 방송을 부탁하는 바람이 더 먼저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무대장치는 상당히 단조롭다. 장면도 액자식 구성을 취해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와 현세기의 태국 논프라덕역 딱 2곳의 장소로만 이동을 한다. 장소의 이동 중간에는 군속으로 실재한 듯한 인물들을 무대 벽면에 흑백영상을 비추어 역사적 사실을 계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듯 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거운 음악들을 깔아 그들의 비극성을 더욱더 강조했다.
전쟁의 참상이란 이미지를 계속 각인시키는 무거운 주제인 덕분에 절제된 감정만이 이 극에 어울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배우들은 매우 감정적이며 격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극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던 연기들 또 현 시간, 현 장소에 어울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 극에 어울린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조선인 군속들은 어느 정도 가해자이면서 어느 정도 피해자라고 하는 정의신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흑과 백 어느 한 가지에 물들지 못한다. 일본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조국에서는 일본군의 앞잡이로 오인 받아 조선인으로 대우받지도 못하며 조국은 해방되어 독립의 기쁨을 누릴 때 이들은 형무소에서 간수들의 핍박을 받으며 외로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형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군인이면서도 절대 명예로운 직책이 아닌 최 말단 계급의 노예나 다름없는 군속. 이들은 그렇게 어디에서도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한 일부로 어울리지 못한 채 그렇게 사실로서도 잊혀 지게 된다.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어느 정도 자신을 생각할 줄 알고 남을 생각할 줄도 알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묻어나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작은 소망조차도 외면하고 순간의 잘못된 기로의 선택이 그들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그들이 했고 우리도 충분히 할 수도 있었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죄에 비해 그들이 당면해야했던 사회적 책임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그들은 너무나 억울했으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독하고 외로운 이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치유 할 것이다. 그 중에 기적같이 감형을 받아 살아난 춘길은 이들의 희망을 그대로 저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난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운명을 넘어선 어떠한 사명감이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엔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달래듯 초롱초롱한 반딧불이가 수많은 별처럼 장식한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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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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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연극 재밋게보신거같네요 앞으로연극많이사랑해주세요~

    2010.10.16 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