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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호

[어린이청소년극하는 사람들]

움직임과 청소년극 ①

권영호

움직임과 청소년극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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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호 움직임디자이너의 ‘움직임’에 대한 탐구는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배우로부터 출발하여 안무가, 연출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을 향한 진지한 여정은 그의 연극 작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움직임 작업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타조 소년들>에서였다. 열정적으로 움직임을 다양하게 제안하면 영국에서 온 토니 그래함 연출은 ‘Good’, ‘Well done’1) 이라고 하면서 ‘Excellent’가 될 때까지 장면을 수정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 장면은 다른 장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품만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창조해나갔던 것 같다.
 “청소년극에서는 왜 자꾸 달리게 될까? 청소년극에서 댄스는 또 어떤 의미일까?” 청소년극 제작경험이 쌓이면서 ‘움직임’에 대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궁금한 지점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여기 권영호 움직임 디자이너의 경험을 시작으로 우리의 질문과 발견들을 축적하고, 공유하며, 발전시켜갈 수 있으면 한다.

- 웹진 ‘청파로 373’ 팀


 청소년극에서 움직임은 다른 감각적 장치인 조명, 무대, 사운드 등과 더불어 중요한 표현의 수단 중 하나다. 필자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 제작한 <타조 소년들>(2014, 2016), <오렌지 북극곰>(2016), <영지>(2019,2023), <더 나은 숲>(2021)의 네 작품에 움직임 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트랙터](2022)는 연출로 참여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직접 참여했던 작품들 이외에도 관람했던 작품들을 포함해서 인상적이었던 움직임들을 통해서 청소년극과 움직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필자가 처음 청소년극의 움직임 감독을 맡았을 때는 청소년극을 잘 모르는 상태였다. <타조 소년들>의 토니 그래함(Tony Graham) 연출이 ‘이 장면에서는 날아가는 장면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그 장면을 만들어 주고 ‘스쿠터 타는 장면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그런 장면을 보기 좋게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움직임들을 연출자에게 제안하려고 애썼다. 그때마다 토니 연출은 능숙하게 필자를 이용하고 때론 이끌어 주면서 자신이 그리는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토니 연출과의 작업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그에게 청소년극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후, 필자도 참여하는 작품의 수가 늘어나면서 청소년극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되었고, 청소년극에서의 움직임이 청소년기의 리듬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아래 다룰 움직임은 필자가 참여한, 또는 관람한 청소년극 안에서 유의미하게 반복되어 등장한 움직임들이고, 청소년극과 움직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해준 작업들이다.

 달리기
 청소년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움직임은 ‘달리기’이다. <소년이그랬다>, <고등어>, <죽고 싶지 않아>, <타조 소년들> 등의 작품에서 달리는 움직임은 자주 등장했다. 특히 <소년이그랬다>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해서 무대를 달린다.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의 뒤로 이어진 긴 통로까지 달리는 동선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달리는 행위는 단순히 빠른 이동을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을 넘어서 청소년의 특별한 생체리듬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첫 대사가 말해주듯이 작품 속 인물들은 “이유 없이 달리고, 심심하면 이유를 만들어서 달리는 것이다.” 작품은 달리는 행위를 청소년들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움직임으로 보고 그것을 작품 안에 중요한 상징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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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움직임을 디자인했던 <타조 소년들>에서도 여러 번 달리는 움직임이 나온다. 소년들이 친구인 로스의 유골함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 갈아탈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기차역을 가로지르는 장면, 그리고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장면과 마지막에 블레이크 혼자 먼 길을 걸어가는 장면도 모두 이동의 움직임으로서 달리기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이 공연에서 필자는 달리는 움직임을 다양한 표현법으로 시도하였다. 유골함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무대를 직선, 대각선, 곡선으로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달리는 와중에 공중으로 유골함을 던져서 전달하도록 했다. 그래서 지상을 빠르게 달리는 신체의 리듬과 공중에 떠서 사람들 사이로 전달되는 유골함의 리듬이 대조를 이루게 했다. 이를 통해 도망가는 소년들의 불안함과 친구의 유골이 들어있는 유골함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했다.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플랫폼을 질주하는 두 번째 달리기는 제자리 달리기로 표현했다. 정면과 좌우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달리는 모습 속에서 달리는 행위 이면에 있는 소년들의 감정을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스쿠터 타기와 블레이크 혼자 먼 길을 걷는 장면도 각기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면서 움직임 표현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한편,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상황마다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감정, 감각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이그랬다>에서도 그랬지만 이상하게도 청소년극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쫒기거나 쫒기 위해서 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년이 그랬다 공연 사진
 꿈 또는 환상을 표현하는 움직임

 꿈 또는 환상 장면도 청소년극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은 비현실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소년이그랬다>에서는 육교 위에서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 때문에 살인자로 몰리게 된 두 소년이 극도의 공포 속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이 꿈 장면은 무대 중앙에 놓인 A형 사다리를 이용해 두 소년이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천천히 기어 올라가고 내려오는 움직임을 통해 기이한 분위기를 표현됐다.

  <타조 소년들>에서는 블레이크가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친구 로스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트럭과 부딪치는 환상을 보게 된다. 블레이크가 높은 곳에서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의 몸이 공중에서 지면과 수평이 된 상태로 매달린다. 이런 불안한 몸의 상태에서 블레이크는 환상을 마주한다. 씸과 케니가 앉아 있던 벤치를 들고 트럭이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이동한다. 그러다가 로스가 탄 자전거와 충돌한다. 이 순간 슬로우 모션이 시작되고 로스의 몸이 하늘로 붕 뜬다. 그리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돈다. 이때 공중에 매달린 블레이크와 공중에 떠 있는 로스의 눈이 잠깐 동안 마주친다. 잠시 후, 로스의 몸은 땅으로 떨어지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이에 맞춰 블레이크의 몸도 지상으로 내려온다. 블레이크의 다리는 아직도 공중에 있는 듯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환상 장면은 공중에 매달리고 들어 올려진 불안한 몸을 통해 블레이크가 느끼는 죄의식 또는 막연한 두려움을 표현하려 했던 움직임이었다.

 느린 움직임
 연극에서 느린 움직임은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관객들이 배우의 몸을 확장하여 인식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객들의 집중도가 올라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연출가나 움직임 감독은 이런 느린 움직임을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거나 그 안에 주제를 숨겨놓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느림 움직임은 <비행소년 KW4839>에서 나왔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이 눈을 감은 채 긴 시간 동안 무대 위를 아주 천천히 걷는다. 떠다닌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우주인 듯 진공의 사운드가 극장을 감싼 상태에서 배우들은 아주 느리게 더듬더듬 공간을 걸어 나간다. 이 움직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었다.
 [트랙터]의 두 번째 단막극 <빵과 텐트>는 아이와 배우가 아이의 잃어버린 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단막극에는 배우가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느린 움직임이 사용되었다. 배우가 천천히 무대를 가로지르며 나아갈 때 다른 배우가 손전등의 불빛을 이용해 배우의 몸을 구석구석 탐색한다. 발부터 시작해서 무릎, 골반, 상체, 팔, 머리의 순으로 불빛을 비추다가 몸 전체로 확대한다. 방향을 바꾸어 다른 각도에서 몸을 탐색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느리게 걷는 몸과 몸을 구석구석 탐색하는 불빛을 사용하면서 관객 스스로가 자신들의 몸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만든 장면이었다.

 춤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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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극에서 움직임이 항상 상징적이거나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장난이나 재미를 위해서 가볍게 사용되기도 한다. 춤과 노래는 예술의 여러 형태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감각적인 행위이며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몸을 아무렇게나 흔들며 춤추고 노래하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진다. <죽고 싶지 않아>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난장의 춤판을 벌이면서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공연의 마지막에 관객과 함께하는 춤판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관객이 <죽고 싶지 않아>에서처럼 열광적으로 노는 공연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죽고 싶지 않아>가 가지고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조 소년들>의 첫 장면도 신나는 춤으로 시작한다. <달리기 육상 천재>에서도 극의 중간중간에 배우가 랩을 하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트랙터>는 세 편의 단막극을 엮어 놓은 단막극 연작이었는데 각각의 단막극 사이에 배우들이 나와 노래와 함께 간단한 춤을 추었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이 앞의 단막극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단막극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단막극과 단막극 사이에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전환 장면을 또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외에도 청소년극에서는 다양한 움직임이 사용된다. 싸우는 움직임, 물속이나 우주처럼 특별한 공간에서의 움직임, 동물의 움직임, 상상력을 발휘하는 비현실적인 움직임 등,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장면은 다양하다. 이런 움직임들은 위에서처럼 청소년과 관련된 특별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 하면 극의 진행을 위해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상으로 청소년극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움직임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청소년극의 움직임 감독으로서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극과 움직임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그것은 첫째, 청소년극에서 움직임은 언어와 조화를 이루고 서로 보완하면서 극의 진행에 도움을 주는데 특히 감각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을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둘째, 청소년극에서 움직임은 청소년기의 특별한 감각과 몸의 특성을 보여준다. 청소년기는 몸과 마음이 빠르게 변화 하면서 매일매일 다른 자아와 만나게 된다. 즉 정체성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 다. 청소년극에서 움직임은 이러한 청소년기의 특별한 몸을 보여주고 그 몸들이 겪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청소년극에 덤벼들었던 필자는 10년이 지난 현재 누구보다 열렬한 청소년극의 팬이다. 움직임도 만들고 연출도 한다. 그리고 올해는 어떤 청소년극이 나올까 항상 기대하면서 기다린다. 청소년극의 이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부분이 좋다. 너무 논리적이기만 하면 피곤하다. 그렇다고 너무 감각만 앞세우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하나의 결론을 관객들에게 주입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 필자가 청소년극에 끌리는 이유다. 앞으로도 그런 공연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


1) 토니 그래함 연출의 ‘Good’과 ‘Well done’은 각각 ‘좋지 않은’, ‘별로인, 그닥인’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의 영국식 반어적 화법에 대해 우리는 연습 중반 정도 되어서야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의 독특한 유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필자 소개]
권영호
움직임 감독과 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무대 위에 살아 있는 몸들이 등장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언제나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연극[움직임]
〈그 여자 이야기〉 〈노인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것은 실존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 〈축제〉 〈더 나은 숲〉 〈영지〉(2019)(2023)〉 〈오렌지 북극곰〉 〈타조 소년들〉 외

연극[연출]
[트랙터] 〈불장난〉 〈오딧세우스〉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 먹었나〉 〈장소의 기억: 하무뭇하니〉 〈무릎이 삐걱거려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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