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검색
회원가입 로그인 지금 가입하고
공연 할인쿠폰 받아가세요!
ENGLISH 후원 디지털 아카이브

  • <[기획초청] 날 보러와요> 뜻밖의 유쾌함 : 연극 〈날 보러와요〉
  • 작성자 이*진

    등록일 2016.01.25

    조회 2960

관람일자는 순전히 우연히 결정되었지만 YB팀의 무대로 이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몇 십 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정말 2016년에 교양인으로서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을 읽을 것 같은 청년과 타고난 직감 탓에 질투에 눈이 멀어 홧김에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건달로 구성된 치기 넘치는 형사 팀의 행동력에 맡겨진 사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인권문제로 더 이상의 고문은 없다’는 김반장의 대사가 앞으로 이 연극에서 통용될 언어를 확실히 현재진행 중에 있을 논점의 한복판에 머물게 한다.

 

이 연극은 철저히 말에 의존해서 전개된다. 기자도 형사 팀도 증거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현장에 남아 있는 유일한 물질적 증거는 지문이 아닌 정액이다. 그런 증거로는 용의자를 식별해 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추적 팀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하면서 일을 하게 된다.

 

형사 팀과 박기자는 전문적으로 일한다. 살인범에 대한 분노는 일단 칼집 속에 감추고 특종기사의 증거인 사진처럼 가장 공적인, 가장 유효한 증거를 찾아 헤맨다. 그들은 여성의 신체가 훼손되고 정액이 남아있다는 정황 때문에 용의자를 좁히기 위해 성범죄라는 관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 세 명의 용의자를 만나면서 그때 그 용의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만이 또 다른 증거가 된다. 외국의 이론은 신빙성 있는 자료로 취급된다는 듯 FBI의 분석이 도입된다. 공간상의 증거 확보에서 길이 막히자 동시간성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마침내 방송과 날씨라는 두 축이 만든 우연이 그들이 추적해야 할 증거가 된다.

 

그런데 그들이 일을 열심히 할수록 점점 이상해진다. 형사 팀이 마치 집에서 마늘을 까듯 혹은 마치 부인의 머리카락에서 흰머리를 찾아내듯 사무실 테이블 위에서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증거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미스 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만 경찰서 사무실에 울리는 이 장면, 극적 긴장감이 너무 풀어져서 미학적 포즈를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이 장면이 될 때까지 관객이 지금까지 무대에서 본 것은 살인범을 잡기 위한 과학적이고 결정적인 증거수집의 과정이라기보다는, 형사 팀과 관련 인물들이 자기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며 정말 성실하게 일하고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정말 열렬히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들이라는 증거뿐이다.

 

김형사가 세 번째 용의자를 심문하면서 이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테마인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무엇을 애도하기 위한 진혼곡인지가 분명해진다. 형사 팀과 박기자가 증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즉 시간과 공간과 성별이라는 상징이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우연히 비슷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착시와 마치 누군가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소한 언사들, 그리고 그 상징들과 말들로부터 증거를 찾는데 혈안이 된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든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허구와 환상들에게 마지막을 고하기 위한 레퀴엠일 것이다. 시대적 언어감각을 애도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인상 깊었다.

 

초연 20주년을 맞아 OB팀과 YB팀으로 나뉘어 상연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무대를 다시 찾아왔을 때 이 작품의 시의성은 증거품과 용의자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남지만 그것들이 진짜로 범인을 향하고 있는지는 오리무중인 채로 오히려 성과의 부재만 부각되는 한국적 근대성의 실체를 언어적 문제로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들어 올리면서 아직 해소되지 못한 이 문제를 다음 세대로 상속한다는 데 있지 않았나싶다.

 

한편, 연극 중간 무렵부터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 용의자가 등장할 때 배우 이현철 님이 역할에 몰입할 때의 집중력에 같이 빠져들어서 사건은 심각한데 비해 왜 웃음이 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실컷 웃었다. 중간 중간에 박형사의 능청도 객석의 웃음물결에 한몫했을 것이다. 용의자가 불려온 이유가 살인사건이었음을 잠시 망각하고 인물의 말과 매력에 공감했던 이 웃음이야말로 사실상 이번 공연이 성공한 증거인 셈이다.

 

 

http://artmconcert.com/220607862001

날보러와요_포스터_최종(main).jpg
[기획초청] 날 보러와요

- 2016.01.22 ~ 2016.02.21

- 월/수/목/금요일 19:30, 토요일 15:00/19:30 2회, 일요일 15:00, 설날 2/8 공연없음, 설 연휴 2/9, 2/10 : 15:00/19:30

- 1/22~1/24

- 만13세이상관람가(중학생 이상 관람가)

자세히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