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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잠 못 이루는 맥베스에게 반딧불이가 날아들었다.
  • 작성자 김*우

    등록일 2010.10.16

    조회 2162

지난 9일, 명동예술극장에 방문했습니다.  언제나 북적거리는 명동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풍스런 명동예술극장은 바삐 돌아가는 일상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공간으로 생경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저는 공연예술의 환상성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일상에서 신세계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명동예술극장에서 관람한 다섯 번째 공연입니다. 정의신 작가에 손진책 연출, 미추의 배우들과 오랜만에 미추 무대에 합류한 서상원 배우까지.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는 조합이죠. 공연에 대한 부푼 마음을 누르고 객석에 앉아 무대를 관찰했습니다.
철로가 뻗어있는 다운 스테이지에 프로젝트는 태국의 평온한 숲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가슴 아픈 이야기를 예측하지 못할 만큼 시원한 풍경입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온 스태프들, 분주한 농담과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춘길 할아버지의 등장.
불편한 질문들을 쏟아내는 피디와 진심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 조용히 피디의 맹공을 견디는 춘길.
자연스레 춘길의 회상으로 장면은 전환이 되고 이따금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플래시백 형태로 공연은 진행됩니다.

줄거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일본인 취급을 당하며 전범이 된 조선인들의 억울함을 담아낸 정도라고 줄이죠.
일련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정의신 작가와 손진책 연출은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하며 연극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듯한 발언을 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그들은 춘길의 태도처럼 진심은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야겠군요. 저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짜여져 충분히 리얼리티가 있지만, 리얼리티만으로, 그리고 같은 민족의 비극적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드라마가 살아나진 않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플래시백 방식으로 전개되는 구성에 있습니다. 회상처리의 구성은 현재와 과거의 정서가 밀도있게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 힘이 떨어지기 쉬운 구성입니다. 안타깝게도 정의신 작가는 이 점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의 춘길은 과거의 일들을 담담하게 읊조리지만 사실 현재에서 더 주목이 되는 이야기는 춘길과 피디의 힘겨루기입니다.  방송계의 풍자를 빗댄 이 힘겨루기가 시작되는  순간 형무소 시절의 아픔은 절반이 날아갑니다. 정의신 작가가 너무 많은 토끼를 잡으려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두번째 아쉬운 점은 디테일이었습니다. 강렬하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의 생명은 사실 소소한 디테일에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디테일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매일 매일 적은 양의 비스킷으로 연명하는 부분은 섬세한 디테일은 아닙니다, 조금 구태의연해 보이기도 하지요.
실제의 삶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묘사가 필요했습니다. 배우들은 열연을 보여줍니다.
근데 선이 굵은 배역들이긴 하지만 충분히 묘사가 그려지지 않아 그것을 열연으로 커버한 걸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야끼니꾸 드래곤과 최근의 겨울선인장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풀어가는 솜씨가 기막힌 정의신 작가에게 소재가 너무 부담이 됐던걸까요? 가진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세번째 아쉬움은 맥베스와 작품의 상관관계입니다. 제목에 맥베스를 끌어올만큼 그리고 맥베스의 새로운 변주라고 작품소개가 될만큼 맥베스가 이 작품과 얼마나 관련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치않는 운명에 휩싸여 비극에 빠져든 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맥베스를 끌어왔다면(사실 얼마든지 그런 비극에 싸여있는 다른 인물들도 많지 않습니까?) 조금 성급한 은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머지 아쉬움들은 이렇습니다.
향토적인 냄새가 배어든 연극성, 프로시니엄을 벗어나 무대를 광장처럼 잘 활용하는 손진책 연출이, 이번에는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승부했습니다. 잘 훈련된 배우들이 열연으로 뒷받침 해줬는데, 안타깝게도 빛을 발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정의신 작가에게 계속되는 미안한 말이지만) 희곡이 가진 한계가 컸는데, 오히려 손진책 연출이 더 과감한 연극적인 시도를 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은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하지만, 울림을 가지려면 현재와의 연결고리가 분명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는 신문이나 책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그만큼 역량이 있는 예술인들이니까요.  

아쉬운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그만큼 기대가 컸던 까닭도 있었겠죠. 후기는 유랑극단 쇼팔로비치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어설픈 글솜씨에 식견도 좁아 좋은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았던 것을 물고늘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쇼팔로비치도 호불호가 꽤 갈렸던 작품이었지만, 저는 작품에 베인 예술에 관한 영속성과 삶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은유에 찬미했었습니다. 풍부한 텍스트의 의미에 감동을 했었구요.

적도 아래의 맥베스도 분명 좋은 작품입니다. 저같은 일반 관객들이 전범들에 대한 검색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손진책과 정의신의 차기작들이 더 기다려집니다. 아쉬움이 조금 더 큰 공연이었지만,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여전히 저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 짓겟습니다.
반딧불이가 날아들었을 때, 춘길은 형무소의 친구들에게, 저는 소중했던,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날 수 없는 누군가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극과는 관련이 없는 울컥함이었습니다. 감상은 저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부분이고 한 공간에서 각자의 색깔로 감동이 발생하는 것이 공연만의 매력이겠지요. 저는 극의 마지막 잊을 뻔 했던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안부를 물었던 것 만으로도 공연이 가치가 있었다고 말하렵니다. 
"난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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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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