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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희망의 거짓말-적도 아래의 맥베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4

    조회 1782

일본의 한 방송국 다큐멘터리 PD는 태면 철도를 건설한 포로들의 감시원인 조선인들 중 한 명인 춘길에게 외국인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사실을 말하게 강요하고 춘길은 아니라고 반박하며 형무소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이 연극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인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 정의신은 왜 맥베스인가? 라는 질문에 “맥베스는 어느 정도 가해자이고, 어느 정도 피해자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B·C급 전범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대본 단계 때부터 많은 얘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맥베스가 권력의 화신이지만, 일본에서는 운명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이미지 차이가 그런 질문을 낳는 것 같다.” 라고 답한다.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죄수들의 절규와 체념, 죄의 인정 그리고 강한 삶의 의지 등을 통해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연극에서 무대는 작은 철로와 형무소 두 가지 뿐이다. 철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의 맨 앞에서 이 작품의 주제를 잃지 않게 한다.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형무소를 나타내는 철문과 사형대로 오르는 계단이었는데 그 어디에도 사람들을 가둬 놓는 벽은 없었고 사람들은 문을 통해서만 이동을 한다. 벽이 없는 형무소세트는 마치 포로감시 일을 그만 두고 떠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일본군의 학대와 철저한 교육에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밤과 낮만을 구분하는 2가지뿐인 조명은 굉장히 연극 무대를 단조롭게 했다. 극의 분위기에 따라서 조명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더라면, 그리고 약간 노란 빛을 띠는 따뜻한 조명 말고 열대의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조명을 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특히 형무소 신에서의 맨발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감탄을 자아냈다. 누구 하나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남성 역의 정나진씨의 연기력은 극의 내용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의 감정 변화를 강력하고도 담담하게 잘 표현해 내고, 노출도 서슴지 않는 그의 열정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신에서 춘길이 현재의 나이든 모습으로 과거의 형무소 사람들에게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에서 작가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나는 문평의 편지를 새로운 PD에게 전하고 반딧불들이 나오는 배경으로 미루어볼 때 춘길이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포로감시원 동료들의 무죄를 꼭 알리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듣자마자 뇌리에 박힌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어요.”라는 춘길의 대사는 한명의 생존자가 살기위해 포로 감시원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는 영혼이 된 B·C급 전범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한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으며 춘길은 이 희망의 통로가 되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B·C급 전범들에게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일을 했다는 누명을 씌우기 전에 그들의 진실을 들어주고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게 하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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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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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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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단조로운 무대였지만,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내용에 집중할 수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사회적인 문제인 친일파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다가간 연극이라고 생각되네요. 잘봤습니다.

    2010.10.15 0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