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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죽음보다 잊혀감이 더 서러웠던 그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2

    조회 1901


죽음보다 잊혀감이 더 서러웠던 그들,

<적도 아래의 맥베스>




 

 

 

일제 치하. 적도 부근의 한 식민지. 삶을 포기 못해 일제의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이용당했음에도 역사는 주범들


대신 눈에 띄는 이 꼭두각시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전쟁범죄자란 낙인을 감당해야 했던 불행한


포로감시원들의 이야기이다. 사형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작가는 마녀의 꾐에 넘어갔던 영웅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울부짖는 맥베


스, 체념하는 맥베스, 그리고 살기를 다짐하는 맥베스를 보며 관중은 이들의 맹렬한 삶의 의지가 단순히 개인의 소망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전쟁의 상흔. 누구에게나 보일만한 눈에 띄는 상처에 작가는 주목하고 있지 않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보이지 않아 곪아버린 상처


다. 누구나 당연시했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지만, 결국엔 그들도 징발당하고 버려진 피해자들이란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


다. 작가는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는지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절절하게 이야기함으로서 감춰졌던 이 부조리에

 
우리가 더 경각심을 가지길 소망한다.

 

 

주인공이 서 있는 무대는 작고 평범하지만 그가 과거를 회상할 때 뒤에서는 더 거대한 무대가 드러난다. 그곳은 황량한 감옥의 모


습이다. 현실의 고요함 속에서 느닷없이 거대한 사연에 직면하듯 서서히 드러나는 감옥은 진실이 오랫동안 감춰져 왔음을 속삭이


는 듯했다. 감옥 한가운데는 사형대로 향하는 계단이 솟아 있다. 죽음이 항상 가까이 있다는 그 사실이 철컥거리는 문소리에 울려

 
극중 내내 메마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적도의 내리쬐는 햇빛마저 그 밝음의 의미를 잃고 무대 전체에 무료함과 답답함으로 다가


왔다.

 

 

이러한 황량함 속에서 배우들의 역할은 어떻게든 사람의 냄새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밝은 모습으로, 때론 침울한 모습으로

 
죽음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희망과 감정을 쏟아내며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이 역할에 가장 충실했던


배우는 정나진과 서상원 이었다고 생각한다. ‘남성’ 역을 맞은 정나진은 천연덕스런 목소리와 걸쭉한 웃음을 섞어가며 참 뻔뻔스러


울 정도로 침울한 분위기에 도전장을 던졌다. 희망을 박박 긁어모아 거짓말처럼 활력을 뿜어내는 남성의 모습은 든든하면서도 한


편 애처롭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정나진이 양을 담당했다면 서상원은 음을 담당했던 배우다. 친구를 죽인 원수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춘길’의 모습과 결국은 살아남아 응어리를 담은 할아버지의 연기는 묘한 인상을 남겼다. ‘조국은 해방


되어 다들 기뻐하는데 왜 나만 일본인이 되어 재판을 받아야 되느냐’는 그의 오열은 그 시대 모든 ‘맥베스’ 들의 한을 담고 있는


듯하다. 

 

 

작품은 춘길의 모습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옥을 나가는 춘길에게 문평과 쿠로다는 꼭 살아남


아 우리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때의 춘길은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지팡이를 의지하여 구부정한 몸을 느릿느릿 옮기


는 모습은 사인(死人)들의 짐을 감당해온 살아남은 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망각하고 싶은 전쟁의 끔찍한 기억이지만 잊어서는 안


되기에 더 이를 악물고 살아남은 그들은 안쓰럽고 초라하다. 일생을 노인으로 살았다는 표현은 그 이후 일본에서도 모국에서도 외


면당할 그들의 삶에 대한 복선인지도 모른다.

 

 

삶의 집착이 결과적으로 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순전 우리의 선택이 낳은 결과라고 자책하는 남성과, 현실 속에


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반문하는 춘길의 모습에서 맥베스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 나는 악당인가. 아니면 피해


자인가.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그리 간단히 망각되어지기엔 서러운 인생들이었단 거다. 작품은 이 포로감시원들의 사례를 통해

 
제국전쟁 시절 조선의 전쟁전범들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과거 잊혀져간 모든 맥베스들의,


남은 삶보다도 더 절실했던 요청일 것이다. 반딧불이 하나 둘 나타나고 나는 결국 당신들 바람대로 살아남았다고 춘길은 고백한다.


눈처럼 내리는 반딧불의 모습. 억눌렸던 그들의 영혼이 풀려나는 듯 아름다운 착각에 빠지며 막이 내릴 때, 그들의 바람이 실현되


길 소망해 본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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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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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줄을 띄워주셔셔 읽기가 쉽네요:) 주제에 대해선 저도 공감합니다 잊혀지기엔 안타까운 사연들이죠 근데 맥베스가 그런 이야기였나요? 전 읽어보질 않아서... 맥베스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좀 추가해주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굉장히 감상적인 글인 거 같아요

    2010.10.17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