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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동물원> 유리는 조섬스럽고 섬세하지만 동시에 강하다
  • 작성자 최*경

    등록일 2014.08.15

    조회 3501

 

입김만 잘못 불어도 부서질 듯 연약하지만 빛이 투영되면 영롱한 환상을 선물하는 투명한 유리처럼, 환상속에서 불안한 가족의 이야기,

<유리동물원>.

 

세 가족 모두 꿈속에 산다.

어머니 아만다는 남부의 블루마운틴 시절을 잊지 못하고 몰락한 지금을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인물이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붙잡고 실현되지 않을 미래를 꿈꾸는 아만다는 그래서 어쩌면 가장 유리처럼 불안하고 부서질 듯 위태로우며 그것이 빚어내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누이 로라는 다리가 불편하고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소심하여 집밖 사회생활엔 젬병이다. 집을 떠난 아버지가 남기고간 축음기와 하나둘 모은 유리동물원에만 집착하며 자신만의 세상에 갖힌 그녀는 세상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이제는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고독한 푸른 장미, Blue Rose다.

공장에 다니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좁은 골목을 서성이며 파라다이스 클럽의 불빛에 넋놓고 쳐다보며 시를 쓰길 꿈꾸는 몽상가 아들 톰 역시 불안한 영혼이다. 그역시 없을지도 모를 어떤 것, 변화와 모험의 세상을 꿈꾸지만 현재 그의 유일한 탈출구라곤 밤새 쏘다니는 길거리와 영화관일 뿐.

그렇게 세사람은 가족이면서도 섞이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평생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이자 멍에인 가족이라는 의미를 이보다 극적이게 설정할 수 있을까.

 

배경이 (스페인 내전의 끝무렵인) 1930년대 후반이라 지금의 시대와는 다른 현실이지만 무대가 전하는 메세지는 일맥상통한다. 물질만능과 고도산업화의 변화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람들의 불안하고 가혹한 현실이 그때와 지금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과거의 향수에서 허우적대는 아만다가 반복적으로 읊어대는 회상과 과장된 화법은, 톰의 짜증이 100% 이해가 되면서도 안쓰럽고 애잔하다. 빠른 현대에서 점점 도태되어 사라져가는 부모님 세대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톰이 꿈꾸는 미래는 아직 곁에 없다. 저멀리 길건너 불빛으로만 화려할 뿐, 신문 헤드라인에서만 손짓할 뿐 그의 현재는 탈출구 없는 미로속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이도저도 못하고 제자리맴맴인 그의 답답한 현실. 결국은 집을 탈출하는 톰의 모습은 나와 닮았다. 그렇지만 집을 벗어나고서도 결국은 끝내 책임지지 못한 누이 로라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 떨칠 수 없는 가족이라는 멍에처럼.

 

다리가 불편한 로라의 결혼을 주선하는 아만다의 강권으로 집에 초대된 짐과 그로 인해 꿈꿨던 환상은 잠시의 매혹에도 불구하고 와장창 깨져버린 유니콘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은 가족은 와해된다. 톰이 떠나버린 집에 남겨진 로라와 아만다의 멍한 시선 끝에 매달린 절망이 참담하다. 과연 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낼까... 그들이 기댔던 톰마저 떠나간 자리에서 그들이 살아낼 방도란!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애잔한 찬가는 덧없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

 

... 깨지기 쉬운 유리와 꺼져가는 촛불은 비단 로라 뿐 아니라 모든 테네시 윌리엄스적 인물을 함축적으로 상징한다. 유리와 촛불은 실용주의와 대량공급이라는 자본주의의 요건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물질이다. ... 유리는 조섬스럽고 섬세하지만 동시에 강하다. ... 새로운 질서의 출현과 그 지배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거나 저항하지는 않는다. 다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잔혹함에 연극이라는 색유리를 투과시켜 사라져가는 것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내고 그 역설적 아름다움을 '기억'하고자 할 뿐이다.

?- 프로그램에서 발췌. p. 12 中 

로라와 짐의 대면이 그닥 공감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그랬기도 하고 과거을 연결 삼아 작업거는 모양새의 짐이 그닥 매력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을테지만 유리동물원을 끼고 사는 나약한 로라의 입장보다 엄마와 톰의 대립이 눈에 들어왔다. 원작의 내용 탓인지, 아니면 배우의 역량인지는 모르겠다만 집에 집착하는 아만다와 집을 벗어나려는 톰의 다툼에서 훨씬 집중력이 좋았다. 톰은 나레이터 역할도 겸하는데 과거 회상이라는 시점으로 연극을 열고 닫는다. 이승주의 또렷한 딕션과 안정된 연기가 인상적이다. 김성녀 배우는 위태로운 자아를 가진 중년의 아만다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천연덕스럽게 구라를 치고 억척스럽게 톰과 설전을 벌이며 이루지못할 꿈을 꾸는 위태로운 영혼을 가감없이 표현해준다. 남다른 존재감!

그리고 라이브로 연주되는 첼로의 음색이 작품의 비극성을 배가시킨다. 가늘게 때로는 강하게 떨리는 음률은 행복한 연주이면서 찬란한 슬픔을 내포하고 있어, 음악은 이 공연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

 

같은 원작으로 김은성이 각색한 <달나라 연속극 (2013)>을 본 적이 있다. 

암울한 현실에 암울한 이야기로 절망적인 미래를 던져놓는 그 연극은 너무나 현실과 닿아 있어 그 씁쓸함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연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암담한 내일에 좌절했다면, 이번 <유리동물원>의 다른 시대적 배경 때문에 연극이라는 환상속에 가두다보니 오히려 가슴에 메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원작 그대로의 힘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하며 떠올리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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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동물원

- 2014.08.06 ~ 2014.08.30

- 평일 19시 30분ㅣ주말·공휴일 15시|
8/21(목) 11시ㅣ8/30(토) 15시, 19시 30분 2회|
화요일 공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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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13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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