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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다 가블러 > <헤다 가블러> :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2.05.28

    조회 4555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Hedda Gabler)>

- 작 :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 번역 : 김미혜

- 연출 : 박정희
- 출연 : 이혜영, 김수현, 호산, 강애심, 김성미, 김정호, 임성미

- 제작 : 명동예술극장

- 2012년 5월 18일 (금) 오후 7시 30분 / 명동예술극장 1층 12열 22번(1부)

- 2012년 5월 27일 (일) 오후 3시 / 명동예술극장 1층 8열 16번

 

헤다는 곧 교수가 될 유능한 문화학자 테스만과 결혼해 6개월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아름다운

저택에서의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고지식한 테스만과의 생활이 헤다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테스만의 친구이자 헤다의 옛 연인인 뢰브보르고가 엄청난 새 책을 출판할 것이란

소식과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난다. 이로 인해 테스만의 교수직이 불안해지자 헤다는 우연히 손에 넣은

뢰브보르그의 원고를 불태워 버리는데…

 

티켓

 

사실 5월 18일 저녁 공연으로 <헤다 가블러>를 처음 보았을 때는,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공연을 제대로 관람할 수가 없었다.

 

단지, 공연 관람 전의 박정의 연출의 15분 강의를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슬로우 모션과 사운드 이펙트가

등장하였을 때 이것이 헤다가 바라보는 작중 인물들의 억눌린 욕망의 표출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은 상태가 악화되어 아쉽지만 인터미션 시간에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것은 "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혜영 배우의 연기가 그렇게도 작품에 어울려보이지 않는 것인가."였다.

마치 그녀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붕 떠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작품조차

분리되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5월 27일 두 번째 공연을 끝까지 보았을 때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배우 이혜영은 아마도 헨리크 입센이 의도한 헤다 가블러, 그 자체를 보여준 것이었다.

 

헤다 가블러는 작품 속 다른 인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캐릭터를 가지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주변인들의 운명을 자신의

뜻대로 되게 하려는, 모든 것에서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는, 강하면서도 약한, 약하면서도 강한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헤다 가블러'이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처음 <헤다 가블러>를 보며 느꼈던 그 불안정함 혹은 그 어색함은 작품 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이해 불가능'이라 이야기 했던 것도,

세상에 나온 지 100여년이 지난 이 작품이 국내에서 '초연'된 것도,

모두 헤다 가블러라는 인물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품의 저자인 헨리크 입센은 그의 희곡들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대중에게 전하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고정관념 · 관습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일깨우려고 했다. 2달 전에 보았던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민중의 적>

에서는 '다수의 의견이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 제기를 통해 하나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역설하였고, <헤다 가블러>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목 자체가 결혼은 했지만 남편의 성(테스

만)을 거부한 여성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입센의 기본적인 사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헤다 가블러>에서 입센은 새로운 여성을 넘어서 새로운 인간을 보여주었다. 바로 자신의 욕망의 실현에

충실한 인물이다. 6개월간의 기나긴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서 짧지만 강렬한 이틀 간의 이야기를 담은 <헤다

가블러>에서 헤다 가블러는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자신의 근원

적인 욕망, 즉 운명(죽음)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한다.

 

그녀를 제외한 작품 속 다른 인물들은 모두 세속적인 욕망에 따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남편인 '테스만'은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에 대한 욕망으로 우유부단하면서도 조금은

멍청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브라크'는 '헤다'에 대한 탐욕을 위해 판사라는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정복하려는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친구인 '테아'는 자신의 주변 남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려는, '뢰브보르그'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테스만의 고모인 '율리안네'는 헤다가 테스만 가문의 자궁이 되어줄 것을 바라는

인물이다.

이렇게 각각의 인물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세상에 맞추며 살아왔다, 마치 우리 모두처럼.

 

그러나 헤다 가블러는 이들과 달랐다. 태생적으로 귀족인 그녀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 지독히도 지루함과

권태를 느낀다. 사랑도 혹은 사랑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태아 또한 그녀에게는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헤다 가블러라는 여성은 이렇게 여성성을 스스로 거부하게 되고, 동시에 현실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동시에 그녀는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작중 인물들의 욕망을 느끼며 그에 대한 거부감과 혹은 슬픔으로 인해

절규하게 되는데 이러한 내적 절규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말하지 못하는 하녀 베르타였다.


테스만이 원하는 아내, 브라크가 원하는 색욕의 대상, 테아가 원하는 친구, 뢰브보르그가 원하는 동지,

율리안네가 원하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그녀는 거부한다.

 

물론 다층적 인물이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자신이 조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뢰브보르그를 자살로 몰고가는 그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이를 빌미로 브라크 판사가

그녀를 움켜쥐려하며 테스만과 테아는 그녀의 상황과 심리는 알지 못한 채 서로의 욕망을 위해 교류하게

된 상황에서 그녀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던지도 모른다.

 

결국은 그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만 남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호흡의 플룻에서 결말은 짧게 진행되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았다.

 

또,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 보았던 점은 무대와 조명의 활용이었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 상상을 통해 지하, 2층, 현관, 정원, 테라스 등으로 확장시킬 수 있도록 가능성을 심어

놓은 무대는 훌륭했다. 그리고 무대의 완성은 물론 인물들의 심리 표현에도 효과적이었던 각종 조명의

활용 또한 정말 좋았다.

 

hidden space와 진동을 활용한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많은 관객들이 인상적으로 느꼈으리라.

 

마지막 공연을 하루 앞 둔 날이었기 때문일까,

명동예술극장과 연이 깊은 이순재 배우와 정동환 배우를 객석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단체사진

 

2012년 5월 28일 마지막 공연을 끝마친 <헤다 가블러>팀의 단체 사진(출처 : 명동예술극장 공식 페이스북),

언제나처럼 무대 위에서 그리고 무대 뒤에서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작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는 이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어려웠다.

그만큼 <헤다 가블러>는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많이 전해주는 작품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미래의 그 어딘가에서 '새로운' <헤다 가블러>를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 · ·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있었던, 그야말로 앙가주망(engagement)을 지닌 작가였기

때문이다. 입센의 전기작가 중 한 사람인 코-트(Halvdan Koht)는 그런 입센의 본질에 대해 "그의 영혼은,

진정한 입센은 악령이었다. 절대 멈추지 않고 끝없이 인간의 심성에 대해 질문하는 탐구자였으며, 인간

존재의 심층까지 가는 길을 찾을 때까지 굴복하지 않는 징벌자이며 몽상가였으며 시인"이라고 쓰고

있다." (9~10)

 

"리뷰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는 '이해 불가능'이었다. 이는 아마도 입센 당대인들이 당시의 도덕적

잣대로, 또한 사실주의 작품 속에 나와야 하는 현실 속의 인물로 헤다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2)

 

- <현대 연극의 초설을 놓은 헨리크 입센, 노르웨이, 헤다 가블러> 中, 김미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내 작품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내 작품을 보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것,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은 바닷가를 거닌다든가

연회에 참석하면 된다. 극장은 목사의 설교처럼 사람의 눈을 뜨게 한다. 그들의 교회가는 것을 꺼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17)

 

- <입센, 일생 외로웠지만... - 전 세계 지식인을 사로잡은 헨리크 입센> 中, 김의경 극작가

 

 

"그러나 헤다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적 규범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19)

 

"헤다의 죽음과 입센의 희곡은 "공공의 합의라는 문학적 관습"(Elizabeth Ermarth)에 도전한다. 이 합의는

"우리는 상식적으로 동의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오래된 비평적 가장이다. 판사 브라크가 이 작품의 끝에서

말하는 유명한 대사, "사람이라면 이런짓을 하지 않아!"가 바로 그런 세계이다. "사람이라면 하지 않는 짓"을

함으로써 규범에서 벗어난 헤다는 자신의 차별성에 찬사를 보내며 죽는다. 권총은 "더 이상 따르지 않겠어."

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발사된다." (20)

 

- <헤다의 차별성> 中

   (출처 : Templeton, Joan, <Ibsen's Wome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rep.),

     pp.229-232 / 번역 이소희)

 

 

'욕망' 혹은 '운명'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핵심인 것 같은데 헤다의 욕망은 무엇인가?

헤다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욕망, 그것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거다. 운명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죽음이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게 운명이니까. 뢰브보르그의 죽음과 자기 죽음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욕망이다. (23)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다. 왜 그동안 공연이 쉽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헤다가 굉장이 복잡한 인물이다. 계속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는 그게 포인트인데, 그 지루함을 이해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지 않다. 지루함, 권태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인 귀족들만 가능하다. 그런 사람이 현실에

들어오려고 발버둥치고, 다시 그곳에서 내몰린다. 그런 인물의 감정의 폭을 지닌 배우들이 흔치 않다. 헤다는

권태로운데 꿈을 이루려고 하는 욕망도 지닌 인물이다. 그 권태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24)

 

- <뜨거운 이틀, 한 인간의 근원적 운명이 숨어있다 - 박정희 연출과의 대담> 中, 최윤우 연극 칼럼니스트

 

(인용된 page number는 <헤다 가블러> 공식 프로그램북에 기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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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

- 2012.05.02 ~ 2012.05.28

- 평일 19시30분ㅣ주말, 공휴일, 5/9(수), 5/23(수) 15시ㅣ화요일 쉼 | 5/3(목) 7시 공연은 매진되었습니다

-

- 1층 중앙블럭 1열과 2열은 높이 차이가 거의 없어서 2열 착석시 1열 관객으로 인한 시야장애가 일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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