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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역사의 흐름앞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970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공연되고 막을 내린 <적도 아래의 맥베스>. 일본군 소속 한국인 전범들의 억울함. 재일교포 2세인 정의신 작가만이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주제이며,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는 연극이다.


 연극은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태면 철도의 출발점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포로수용소의 감시원 생활을 했던 한국인 김춘길의 증언을 녹화하며, 이 과정에서 연극은 1947년과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광복 후 2년이 이미 지난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 형무소. 패전국인 일본의 전범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여기엔 일본인뿐만 아니라 포로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을 비롯하여 박남성, 이문평 이라는 두 명의 한국인이 더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형을 선고받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비참한 상황,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는 것으로 연극의 대부분이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박남성 역을 연기한 정나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박남성은 표지도 거의 떨어져 나간 <맥베스> 책을 항상 들고 다니며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몸짓으로 형무소 안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다. 사형집행 통보를 받고 나서 절망감에 빠졌다가 ‘우울한건 나와 맞지 않아’ 라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다가도 다시 슬퍼하는 모습 등으로 볼 때, 내일 사형당할 사람의 혼란스러움을 훌륭한 연기로 잘 표현해 내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연기는 2009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에 빛나는 춘길 역의 서상원. 그는 현재의 노인 춘길과 창이 형무소에 복역 당시의 젊은 춘길을 오가며 연기한다. 자신의 상관이었던 야마가타를 증오하며 죽이려 할 때는 젊은이의 무모함마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다음 장면에서 바로 다시 노인 춘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날 때에는 세월의 무상함에 측은한 마음이 생겨날 정도다.


 기법 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일 마지막 부분이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연극은 1947년의 창이 형무소에서는 젊은 춘길을, 현재의 다큐멘터리 촬영현장에서는 노인 춘길을 예외 없는 규칙처럼 충실히 보여 주다가, 느닷없이 현재의 노인 춘길을 창이 형무소에 복역 중인 쿠로다와 문평의 앞에 드러낸다. 이것은 노인의 가슴속에 젊은 날의 그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꼭 살아남아 우리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 주겠다’ 는 그 약속을 지켰음을 나타낸다.


 연극은 억울하게 전범으로 내몰린 한국인 군속들이 이러한 결과를 자초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던진다. 포로 감시원으로 자원한 남성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는 부잣집 아들로서 자원한 경우다.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몸을 맡긴 채, 마을 이장에게 등 떠밀려 끌려온 춘길처럼, 상황을 바꿀 힘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춘길의 경우가 당시의 조선인들 대부분을 대표한다.


 연극 사이사이에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상당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참한 목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필자가 관람했을 당시, 극 후반부에서는 관객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커튼콜에서는 정말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맥베스> 와의 연관성을 너무 제한된 대사로,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굉장한 연극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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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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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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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좋은리뷰입니다 글쓴이의 감상이 잘느껴지네요 한국인인 우리도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있던 일본군 소속 한국인 전범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도 너무 좋은것같고.. 꼭한번 보고싶습니다

    2010.10.17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