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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그들은 비극의 길을 선택했다.
  • 작성자 이*숙

    등록일 2010.10.15

    조회 1588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진 <적도 아래의 맥베스>라는 눈에 띄는 제목을 가진 이 연극은 <야끼니꾸 드래곤> 이후로 챙겨보는 명단에 추가된 정의신님의 작품으로 극단 미추의 손진책님이 연출했습니다.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공연 내용도 우울한데다가 관람 일정이 잘 안 맞아서 보러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엊그제 보러 가고야 말았어요. 155분이라는 공연 시간의 압박이 있었지만... 보고 나서 이것저것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던 춘길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제안으로 태국에 왔습니다. 전범으로 사형언도까지 받았던 춘길에게 당시의 일을 증언하게 하려는 거죠. 춘길은 1947년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서 지낸 여름의 기억을 더듬어 갑니다. 연극을 싫어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군속에 지원했던 남성, 친일분자로 낙인찍힌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실 어머니 생각에 눈물 마를 날 없는 문평, 모든 게 억울하다는 같은 감시원인 일본인 쿠로다, 포로수용소 담당이었던 군인 야마가타의 이야기를 시작하는군요.


공연은 2010년의 태국 논프라덕역과 1947년의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라는 두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돼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예전에 학도병과 노무자로 전쟁에 휘말렸다가 일본으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조선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기억났습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입장에 서야 했던 건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는 숱하게 만나게 되는 모습이라서 우리 민족의 운명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남성이 들고 나와 공연 내내 끊임없이 활용하긴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에 <맥베스>를 선택한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그 길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여러 길이 있음에도 그걸 선택했을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맥베스가 처한 비극이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끊임없이 선택한 결과였듯이... 남성의 말대로 다른 길이 있었음에도 감시원을 선택한 것이 그들이 지닌 절대적인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 시간도 길고 1막이 지루하다는 후기를 읽어서 걱정했는데... 시공간을 오가느라 전반부의 긴장이 약해지는 면은 있었으나 기대보다 훨씬 집중력을 가지고 무대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의외로 꽤나 담담하게 다가온 점과 정의신님 특유의 힘이 살아있는 대본도 괜찮더군요. 캐릭터를 잘 살린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덕분에 진짜 형무소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해자인 일본인과 피해자인 조선인의 틀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선과 악이 아닌... 시대의 비극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고통과 상처를 만들어낸 당사자들보다 역사에 등 떠밀린 평범한 사람들이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인가 봐요. 그래서... 마지막에 약속한대로 살아남았다는 춘길의 말이 이리도 묘한 여운을 남겨줬나 봅니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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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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