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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의 비극> 'X의 비극' 관람 후기
  • 작성자 박*하

    등록일 2021.04.07

    조회 47

그저께 국립극단에서 <X의 비극>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치열한 티켓팅에서 살아남아 운 좋게 마지막 공연 날 관람을 할 수 있었다.

 

<X의 비극>은 마흔넷 현서가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 자리에 있는 그대로 뻗어버리며 일어난 소동을 다루고 있다. 아내 도희, 아들 명수, 어머니 영자, 친구 우섭이 나서서 그에게 얼른 일어나라고 설득하고 화를 내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의미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는 와중에 명수의 과외 선생님인 애리가 현서에게 다가가 비밀스러운 제안을 한다.

 

여러 일상의 공간이 중첩된 듯한 무대 디자인, 배우들의 독특한 움직임 그리고 러닝 타임 내내 정말 누워있기만 하는 현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연극에 대한 관념(예컨대, 관객이 연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자제해야 한다는 등의 것들)을 깨부수는 연출이 눈에 띄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유진 작가가 쓴 희곡을 읽어보니 원래부터 이런 파격적인 연출을 염두에 두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공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윤혜진 연출가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 같은데, 매우 훌륭한 시도였다. <X의 비극>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부각하는 데 연극적 장치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X의 비극>을 다 보고 딱 떠오른 생각은 주인공 현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 즉 현서가 겪고 있는 번아웃 증후군을 단순히 개인의 정신 질환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느 날 현서가 별안간 드러누운 까닭은 무엇인가. '나를 추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고,조그만 잘못도 남 탓'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제로섬 게임' 같은 사회에 환멸 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병철 교수가「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잘 지적했듯, 자기 착취가 만연한 이 시대(자신이 착취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성과사회)에 현서가 보이는 번아웃 증후군은 사회 병리적 현상에 더 가깝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ㅡ도희, 명수, 영자, 우섭은 이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현서에게만 각성을 요구한다. 자신들도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렇게 꾹 참고 열심히 사는데(중첩된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무의미한 움직임의 반복), 너는 왜 누워만 있냐고 타박한다. 물론 그 타박은 현서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를 더욱 깊은 곳으로 끌고 갈 뿐(점점 내려앉는 돌 오브제와 약간의 움직임조차 거부하는 현서)이다.

 

바로 그때 현서에게 자살할 것을 권유하는 애리가 등장한다. 어차피 누워있기만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텐데, 그 끔찍한 죽음보다야 깔끔한 자살이 낫지 않겠냐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서가 겪는 번아웃 증후군에 올바른 처방전이 아니다. 현서는 죽고 싶어서 누운 게 아니다. 그는 살고 싶어서 누운 거다. 진짜 죽고 싶은 사람은 가족에게 보험금이 제대로 돌아갈까 걱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아들이자 남편, 아빠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그이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그 끈을 영영 놓지 않고 있다. 결말부의 현서가 애리가 남겨놓고 간 알약들보다 어머니가 놓고 간 부적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내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서의 비극은 일 년 동안 뉘었던 몸을 마침내 끙끙거리며 일으키려고 할 때 정점을 찍는다. 아무도 그의 번아웃 증후군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해 못함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들조차도 집어삼켜버리는 끔찍한 사태를 초래했다. 이 사태 앞에 현서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들이 드러누워 버리고, 병에 걸리며 죽은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현서는 번아웃으로 자기착취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비극은 형태를 달리해서 반복될 뿐이었다. 촘촘하디 촘촘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입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현서는 이제 자신의 비극을 담담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살아보련다.'. 관객들은 에필로그 장면을 보며 연극의 제목이 왜 <현서의 비극>이나 <현서네의 비극>이 아니라 <X(미지수)의 비극>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 instagram : @blossom_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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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 2021.03.12 ~ 2021.04.04

- 평일 19시 30분/ 토, 일 15시 (화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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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 이상 관람가(중학생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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