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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7)> 가장 '중국적'인 것의 가장 '한국적'인 해석
  • 작성자 박*철

    등록일 2017.02.05

    조회 3011

가장 ‘중국적’인 것의 가장 ‘한국적’인 해석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감상 후기

이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러니하다. 중국의 작품, 게다가 고전 작품을 한국의 ‘국립’ 극단에서 하는 것도 그렇고, 중국의 4대 비극으로 불리는 작품인데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도 그렇다. 
연극 ‘조씨고아’는 원 초기 작가 기군상이 쓴 원대 잡극을 한국인 연출가인 조선웅이 각색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선진 시대 <춘추> 등에도 기록된 바 있는 조씨 가문의 몰락과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조씨 가문의 마지막 씨앗인 조씨고아가 가문을 음해한 세력에 복수를 단행하고 복권을 이뤄내는 과정을 담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지만, 이 극은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지양하고 서사에 공을 들여 보편성을 확보하고, 관객들이 쉽게 극에 녹아들 수 있게 유도한다. 다양한 인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빠르면서 정확한 호흡으로 풀어내는 연극적 기지는 이 극의 가장 큰 특장점이다.
중국어로 연극은 ‘话剧(말로 하는 극)’로 번역되는데, 이는 연극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번역이다. 연극은 ‘말’에 의해, ‘말’로써 완성되는 예술 형식으로, 그 묘미 또한 이 ‘말’에 있다. 모든 연극적 장치(배우의 연기까지도) 역시 ‘말’을 위해 복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씨고아>는 연극의 본질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극이라 볼 수 있다. 외국 작품을 각색한 대부분의 극의 고질적인 문제인 번역투가 이 극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원작과 전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 한국어 대사는 이 작품의 백미 중 백미이다.
한국어는 다분히 감성적인 언어다. 논리적인 엄밀함보다는 직관적인 느낌에 충실한 한국어에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며, 명사보다는 동사와 형용사가 발달되어 있다. 한국어의 이러한 특성은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데, 걸작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연극 작품의 대사를 보면 정갈하면서도 수려하고, 담백하면서도 화려한 ‘말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고전을 번안하여 각색했음에도 이것이 외국의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장장 두 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촘촘히 채우는 한국어 대사와 ‘말맛’의 몫이 크다.

“슬픔은 억지로 짜낸다고 나오는 감정이 아니에요. 오히려 해학과 약간의 웃음기가 동반될 때, 슬픔은 극대화됩니다”(연출가 조선웅 인터뷰 중) 
이러한 생각때문인지, <조씨고아>는 비극 치고는 호흡이 매우 빠르고, 보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유쾌하기까지 하다. 연극에서 비극적인 장면에 희극적인 상황을 삽입하는 연출 기법을 ‘코믹 릴리프’라 하는데, 이러한 연출을 가능하게 한 것도 팔할은 한국어 대사에 있다. 극중 인물들은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져 생사의 경계에 서 있을 때도 “슬퍼요”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이를 대신하는 것은 “슬픔이 메아리가 되네”, “뺨에는 두 줄기의 눈물만 흐른다”, “이 두루마리 속에 그때의 뼈 아픈 사연이 다 담겼구나” 등의 감각적인 한국어 표현이었다.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연극 <조씨고아> 중)
한국어의 또 다른 매력은 리듬감에 있다. 한국어는 화자(말하는 이)에 따라 순서, 위치 등에 제한 없이 단어(또는 말)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재구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별다른 장치(접속사 또는 연결어) 없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연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속박이 없으니 리듬감이 쉽게 형성되고, 또 다양한 표현, 감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배우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대사를 자유롭게 ‘조리’할 수 있으며,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동원하여 대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 해석할 수 있다. 

중국 고전 작품을 각색한 작품을 보고 ‘한국적인 것’, 특히 한국어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이로 볼 때, 연극<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단순히 잘 만들어진 연극 한편을 뛰어넘어, 국경, 시대, 민족,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역사적 발자취라 할 수 있겠다. 가장 세계적인 소재를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이것이 한류(韩流)의 본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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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7)

- 2017.01.18 ~ 2017.02.12

- 평일 19시 30분│주말 및 공휴일 15시│화요일 쉼
※ 단, 문화가 있는 날 1.25(수) 15시 1회
※ 1.27(금), 1.28(토)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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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 이상 관람가(중학생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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