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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수연발> 희소성의 경쟁력, 현명한 각색
  • 작성자 오*수

    등록일 2017.01.07

    조회 3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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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국내 공연계 역시도 해외에서와 다를게 없이 매년 질리게 만날 볼 수 있는게 셰익스피어 작품인데 올 해는 예년보다 한 술 더 떴다. 마침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이라고 해서 1년 내리 아주 포화상태로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밀려 들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이라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회고하는 특별기획전이 숱하게 열렸고 국내에서도 너나할것없이 셰익스피어를 꺼내들었다.

 

겸사겸사였을것이다. 올해처럼 서거 400주년 기념, 혹은 무슨무슨 탄생일 등등의 기념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셰익스피어는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 등지에서 늘상 선호되는 극작가이다. 가장 많이 재해석되는 작가이기 때문에 문화계는 언제든 셰익스피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 이번달만 해도 연강홀에선 김수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또 창작뮤지컬로 해석된 [로미오와 줄리엣]이 개막했고 달오름 극장에선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의 대가로 인정 받는 양정웅이 문근영을 데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실험하고 있다. 근데 저작권에 구애 받지 않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오래 전부터 레파토리로 선호되는 작품일수록 같은 작품 각색물이란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처럼 동시다발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저작권을 획득한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개막하기 8개월 전에 윤석화가 제작한 같은 원작의 뮤지컬 각색물인 [사춘기]가 창작으로 분류되어 2008년 8월에 개막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원 제작사의 온갖 간섭을 견디며 이듬해 6월에 국내 초연됐다. 뻔히 해외 화제작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라이센스 기획으로 개막될것을 알면서도 저작권과 무관한 100여년 전 원작을 독립된 관점으로 각색한 개별 작품일 뿐이라며 같은 원작을 날름 집어와 그것도 뮤지컬로 창작하여 선수친 [사춘기]는 해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사춘기]의 초연 당시 공연계에선 상도에 어긋나는 짓이라며 윤석화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셰익스피어에 한해선 같은 작품을 같은 기간에 우려먹기식 재해석으로 남발하여도 동종업계의 상도를 논하지 않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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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시기적으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보니 이에 탄력 받아 회고전식의 셰익스피어 기획물이 유난히 활기를 띄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기획하여야 할 명분이 확실하다 보니 다른 해보다 의욕적으로 온갖 공연 기획사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건드렸던것같다. 많은 곳에서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기획됐고 취사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분에 올해만큼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달아 봤던 해도 없었다. 연초부터 셰익스피어 작품과 친숙해진 공연 취미를 영위했다.

 

연초에 국립극단의 [겨울이야기]로 올해의 셰익스피어 작품 관람을 시작했다. 올해의 마지막도 역시 국립극단의 셰익스피어 재해석이 깃들여진 [실수연발]로 셰익스피어 작품 관람을 마무리 하게 됐다. 문근영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일은 없을것같다. 양정웅 연출 때문에 살짝 관심은 갔지만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 작품을 원래는 되게 좋아했는데 지난 기간 동안 온갖 각색물로 너무 많이, 자주 접하다 보니 극 구성 자체에 질려 버렸다. 어떤식으로건 아직까진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라면 그 자체만으로 질색이다.

 

2016년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인 덕분에 그동안 공연계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기획되어 반가웠던 해이다. 셰익스피어 초기작인 [실수연발]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 명목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상업성과 거리를 두기 쉬운 국립극단이라 해도 접근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국립극단이었기 때문에 연초엔 실패한 재해석인 [겨울이야기]를 기획할 수 있었고 연말엔 [실수연발]같은 가벼운 셰익스피어 초기작을 발굴할 수 있었을것이다. 국립극단은 연초엔 국내에서 잘 올려지지 않는 셰익스피어 후기작인 [겨울이야기]로 기획력을 아슬아슬하게 시험하더니 연말엔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 자주 언급되지도 않고 기획 선호도가 굉장히 낮은 [실수연발]로 다른 공연 기획사들의 셰익스피어 의존증과는 판이 다른 경쟁력을 키웠다. [겨울이야기]때도 그랬지만 [실수연발]도 국내에서 인기없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거의 발굴하다시피 한 기획력에 희소가치를 느끼고 관람을 선택하였다. 두 작품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극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고 국립극단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지는 작품 발굴이었다. 이런 기획을 국립극단이 안 하면 누가 하겠나. 이런 기획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국립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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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마무리 짓는 연말에 딱 맞춰 개막한 [실수연발]은 연초에 해외 연출가의 섣부른 재해석이 화를 부른 [겨울이야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라는 무게감이 눌리지 않고 희곡의 의도에 충실히 부합하는 유쾌한 작품으로 가벼운 소동극의 즐거움이 넘치는 오락물로써 깔끔하게 완성되었다.

 

국립극단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라면 올 해를 마무리 짓는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연초에 기획했던 진지한 시대극인 [겨울이야기]를 올리는게 좀 더 의미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초에 가벼운 소동극인 [실수연발]로 몸을 푼 뒤 무르익은 극작술을 느낄 수 있는 셰익스피어 후기작인 [겨울이야기]로 매듭을 짓는게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의식의 모양새를 살리기가 좋았을것이다. 그러나 국립극단은 반대로 기획순서를 배치했는데 작품의 밀도를 올리는 면에서 봤을 때 현명한 방향이었다.

 

인물중심으로 드라마의 흐름이 조성되는 [겨울이야기]와 달리 [실수연발]은 앙상블의 호흡이 코미디의 온도를 좌우하는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작년부터 시즌단원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번 [실수연발]에는 2016년에 입단한 20명의 국립극단 시즌단원 중 18명이 참여하여 앙상블 효과를 의도했다. 프로덕션상의 초연인 국립극단의 이번 [실수연발]은 지난 1년 동안 국립극단 소속으로 동거동락했던 기성배우들이 극단 정기공연으로써의 발표회 같은 의미를 더하여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국립극단 자체적으로 의미있는 산물이었다. 이런 방향의 기획을 연초에 저지른다는건 당연히 무리수가 따르는 일이다. 단원으로 뭉친 기성배우들이 기분 좋게 화합하기엔 무거운 [겨울이야기]같은 작품보단 [실수연발]같은 앙상블 코미디가 적당하다.

 

나는 올 해 시즌단원으로 입단한 박윤희 때문에 이 작품을 본것도 있었다. 원래 박윤희는 이번에 국립극단 시즌단원이 되기 전부터 국립극단 작품과 친숙한 배우였다. 아마 2016년 국립극단의 시즌단원 중 박윤희만큼 국립극단 작품에 출연한 배우도 없을것이다.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고 처음 기획했던 [오이디푸스]부터 시즌단원으로 입단하기 전까지 국립극단 작품에 단골로 참여했던 배우라 올 해 시즌단원이 된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박윤희는 원래 국립극단이 시즌단원제를 첫 시행했던 작년에 시즌단원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제안 받은 [맨 끝줄 소년]에 대한 욕심으로 작년엔 접고 올 해에 예상했던대로 국립극단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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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20대 후반인 1592년에서 1593년경에 쓴것이라 추정되는 [실수연발]은 처녀작에 가까운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이다. 셰익스피어도 인간이니 당연히 습작기가 있었고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햇병아리였던 시절에 완성을 본 물렁하고 엉성한 희극이었다. 작품 자체가 가벼운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구성도 다른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달리 헐렁하고 주제의식도 얕아서 오늘 날의 무대에서 각색의 선호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선 2002년 소극장 공연 이후 처음 선보이는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많은 셰익스피어 걸작, 수작을 다 두고 별 의미도 없고 구성도 약한데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같은 평작처럼 유명한 희극도 아닌 이 작품을 굳이 끄집어 내어 기획하여야 할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 국립극단 기획도 그동안 국내에서의 무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 작품을 기획한것이라서 희소성에 주목을 받은것이지 작품적으로는 제대로 분석될만한 가치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범접할 수 없는 희곡계의 위인이 남긴 초기작이란것에서 소박한 흥미가 동할 뿐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연보 중 세번째나 네번째에 해당하는 완전 초창기 산물이다. 당시의 극작 풍습, 그리고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기존에 나와있던 원작을 셰익스피어가 재해석한 결과다. [실수연발]에서 차용한 작품은 고대 로마 작가인 플라우투스의 [메네크무스 형제]와 [암피트리온]이다. 귀족 쌍둥이 형제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인도 형제를 잃어버린 쌍둥이란 설정은 셰익스피어가 재해석하면서 추가한 요소이다.

 

국립극단이 원작 그대로 옮기면 100분 정도 되는 희곡을 20분 정도 늘려 쇼적인 면을 부각시킨 이번 재해석에 현재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인데 그건 국립극단의 재해석이 멍청했기 때문이라기 보단 작품 자체의 태생적 한계 탓인것같다. 그저 셰익스피어의 존재감에 압도되어서는 원작이 가진 문제와 한계, 산만한 전개, 소모적인 설정과 단발성 웃음의 휘발성 강한 요소들은 뒤로한 채 괜한 국립극단 탓만 하는것이다. 작품 자체가 그리 신통치 못한데도 별것도 아닌 부분을 가지고 셰익스피어와 연관지어 확대해석하는게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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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연발]이란 작품이 애초에 야심을 드러낸 작품도 아니었고 처녀작에 가까운, 셰익스피어 습작기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거의 올려지지도 않았던 이 작품을 이 정도 수준의 연말 오락용 코미디로 완성한 국립극단의 해석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국립극단은 [실수연발]을 부담없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코미디로 잡고 정극의 기운이나 고전의 겉멋을 더하기보단 [라이어]같은 소동극을 의도했다.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깊은 고민과 각종 은유와 암시를 통해 시의성을 던지기보단 관객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중적인 연말용 코미디를 염두해 둔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대로 작품은 어떤 예술적 허영심이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무게감을 버리고 가볍게 진행된다. 원래 원작이 그렇기도 하지만 국립극단은 원작의 성격에 모나지 않게 재해석의 양념을 적당히 쳐가며 쉽고 재미있는 서민연극을 표방했다.

 

원작의 분량에서 20분 정도 늘려 막간극과 뮤지컬적인 장면을 녹여 관객과의 교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객석의 반응도 우호적이다. 소동극의 전개로 정신없이 흐르는 코미디는 슬랩스틱과 말장난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일부는 의도한만큼의 결과로 코미디 정서가 표출되지 못해 썰렁할 때도 있고 일부는 어정쩡한 감각으로 코미디의 융합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소동극 설정으로 꼬인 인간관계가 흐뭇한 해피엔딩으로 동화처럼 풀려 버리는 이 작품의 희극적 요소는 관객의 집중력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귀엽게 웃겨준다. 특히 박완규의 대사소화력이 빛나는 세속적인 보석상인 안젤로의 과장된 이중성과 어리숙한 사악함은 감초 역을 톡톡히 해내며 관객의 입가를 늘려주는데 일조했다. 쌍둥이 하인으로 등장하는 김정환, 김정호의 자연스러운 호흡과 해맑은 모습은 관객을 정화시켜주는 순수한 파괴력이 있다. 알록달록한 모양의 양복을 갖춰입고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 역의 안병찬, 임영준은 훤칠한 매력이 있다. 박윤희를 비롯하여 연주와 연기를 병행하는 배우들은 극의 코미디가 유려하게 흐르도록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객석의 웃음을 성공적으로 유도했다.

 

운명이 엇갈린 쌍둥이 형제가 우연찮은 계기로 서로의 공간에 들어서면서 주변의 오해를 받고 엉뚱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나 성격, 행동양식이 결정된다는 인간사의 모순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예리한 블랙코미디적 주제의식으로 연구될 수준은 못된다. 어떤 직장, 어떤 경험이라도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참고로 도움이 되듯 모든 작품에서 이야기의 방향성에는 어떤식으로건 의미를 찾을 수가 있는것이다. 셰익스피어라고 확대해석하는것도 고질병 중 하나이다. [실수연발]은 부담없이 가볍고 즉홍적인 재미를 안겨주기 위해 과장된 상황을 조성한 본능적인 코미디이고 국립극단은 작품의 의도를 연말용 서민공연으로 좀 더 호들갑스럽게 부추긴것뿐이다. 극 내내 따뜻한 정서로 돌진하는 귀여운 재미가 있어서 즐겁게 감상했다.

 

 - 토요일 오후에 봤는데 촛불시위의 영향인지 토요일 오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보면서 이렇게 좌석점유율이 떨어지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보통 주말엔 95프로 이상은 차는게 명동예술극장 공연인데 이 날은 한 70프로 찼던것같다.

(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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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연발

- 2016.12.03 ~ 2016.12.28

- 평일 19시30분│주말 15시│화요일 쉼
※ 단, 12.27(화) 19시 30분 공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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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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