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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 수작이 될 수 있었던 범작
  • 작성자 김*별

    등록일 2015.11.28

    조회 3168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은 9월에 공연하던 연극 중에서 <즐거운 복희>,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와 함께 굉장히 기다리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상당히 높은 기대치가 섞여 있었기에 객관적인 완성도에 비해 좀 짜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공연 끝나고 느낀 감상 그대로라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구요.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래요.

 

 중간까지는 정말 만족스럽게 잘 봤습니다. 처음에 "권력이란 이 의자와 같다"며 비유하는 것도 참신했고, 사건이 벌어지고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도 괜찮았습니다. 적당히 유들유들하며 제멋대로 사는 길강의 캐릭터도 잘 보여줬고, 천년 전 신라로 돌아가서 어르신을 만나 피리를 부는 과정도 동화같고 좋았어요. 사실 기자들이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이고 각자 입장에 따라 보도를 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부분은 사회풍자를 위한 장면이니만큼 작가가 힘을 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직설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극을 보면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집중력이 있었어요!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 극을 잘 보다가도 극에 나오는 어떤 소재를 보며 연상작용을 하면서 딴생각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건 굉장히 극이 흡인력 있고, 뒷이야기가 많이 궁금했다는 거죠. 웃음코드도 적절했고, 관객을 쥐었다 폈다 하는 부분도 좋았구요.

 

 그런데 중간부터 극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국선과 왕이 만파식적을 둘러싸고 칼싸움을 벌이는 바로 그 부분부터 앞부분과 같은 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설프게 전개됩니다. "사내치고 곱상하게 생겼다"는 둥,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라"는 둥 길강이 국선이 여자임을 못 알아보며 던지는 말들도 도대체 왜 넣었는지 알 수가 없고, 무엇보다 국선의 이상에 감화되어 반역이란 큰 일을 함께 도모했어야 할 화랑이 국선을 따르겠다면서 그 순간에 키스를 시도하는 부분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 이런 식으로 풀어버리면 그냥 다 뻔해지는 건데요.. 결국 사랑놀음하다 죽는 것밖에 안되는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 모든 패착은 국선이 남장여자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차라리 아예 남자로 설정하는 게 나았어요. 

 

 그리고 보다보면 길강의 태도에 진짜.. 막 짜증이 나요. 아니, 일단 자기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고 죽이고 있는데, 당장 자신도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달관한 사람 같이 "이건 피리야. 칼이 아니란 말이다!" 이딴 소리나 해대고 있습니다. 국선이 살면 자기도 살고, 국선이 죽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게 뻔한데, 끝까지 국선을 도와주지 않아요. 아니, 만파식적을 사사로이 쓰기 싫어서 피리를 불지 않기로 했으면 국선을 내리치려는 사람을 몸으로 밀쳐내기라도 했어야죠;;; 이미 앞에서 "당신의 이상은 너무 착하다"는 식으로 국선을 이상주의자로 판단했으면서 왜 끝까지 당신도 똑같이 변할 거라는 이유로 당장은 타락하지 않은 이 사람을 죽어가게 내버려 두는 거죠?

 

 게다가 "내가 다 안다니까" "내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줄 알아?" 로 시작하는 멘트는 길강을 순식간에 현실에 안주하는 꼰대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혁명은 다 실패하게 마련이야. 다 그래" 하면서 혁명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도 별로였어요. 물론 피가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죠. 어느 세상이 오던 여전히 권력자는 존재하고,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혁명은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바꾸지 않았나요? 프랑스 혁명이나 우리나라의 4.19 혁명이 아무 의미가 없나요?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권력자들의 생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이전보다는 더 국민의 눈치를 보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시스템이 되지 않았나요? 적어도 왕정제보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삶이 더 낫지 않나요? 역사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일들을 부정하는 듯한 길강의 발언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의 임팩트가 좀 약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 풀어내는 극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인공 길강이 좀 더 관객들의 마음을 얻은 상태였다면 그 충격과 분노가 훨씬 더 컸을 텐데.. 아쉽습니다. 

 

 뭔가 계속 쓴소리만 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이 모든 부정적인 평가는 후반 지점까지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온 겁니다. 더 완벽하고 더 좋은 극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살짝 삐끗하니까 관객 입장에서 너무 아쉬운 거죠. 대놓고 직설적으로 던지는 식의 촌스러운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데다 블랙코미디 풍자극으로서도 훌륭했는데, 갑자기 길강이 '결국은 다 똑같은 놈'이라며 냉소하는 순간부터 끝을 위한 끝만으로 달려가는 느낌이었거든요. 어떻게든 길강이 노력을 하다가, 애쓰다가, 바꿔보려고 하다가 최후를 맞이했으면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거예요.

 

 배우에 대해 말하자면 다들 살짝살짝 대사를 버벅거리긴 했는데, 첫공인 걸 감안하자면 그런 실수 정도는 애교죠~ㅎㅎ 전체적으로 배우진에 대해 만족합니다만, 국선 역을 맡으신 채윤선 배우가 표정이 너무 한결같으셔서 그게 좀 거슬렸네요. 특히 현대 부분에서 웃고 계신 표정이 일본 전통극의 노 같았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캐릭을 잡으신 게 아니라, 본래 연기할 때 톤이나 표정이 그런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나 지금 연기해요' 느낌을 주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는 수작이 될 수도 있었던, 될 뻔한 범작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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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

- 2014.09.05 ~ 2014.09.21

- 화수목금 8:00pm / 토일 및 공휴일(9/9, 9/10) 3:00pm / 월,9/7(일) 공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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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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