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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조 소년들> 한때 반짝였으나 지나가고 마는 어떤 순간들에 대하여
  • 작성자 김*별

    등록일 2015.11.28

    조회 2457

포스터이미지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유골을 훔쳐 들판을 뛰어 도망치는 소년들'

 

 시놉에서 받은 이미지는 딱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극도 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공연을 보기 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 얌전하면서도, 약간은 정신없는 극이었습니다. 21세기 판 허클베리 핀이나 연극버전 스킨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들과는 말하고자 하는 초점이 살짝 다른 느낌이에요. 

 

 시작은 컨츄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는 네 명의 소년들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익숙하다는 듯이 춤을 추던 이 소년들은 곧 흩어져서 돌림노래처럼 제각각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일이 시작된 건 로스의 장례식, 그때부터."라고요. 그들은 로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들, 선생님, 친구들이 얼마나 거기에 올 자격이 없는지, 그들이 온 장례식장이 얼마나 역겨운 곳인지를 토로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만의 '진짜' 장례식을 치뤄주기로 결심해요. 로스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아이디어ㅡ로스를 로스로!ㅡ를 실현시켜 주기로 한 거죠. 그리하여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은, 그들의 소중한 친구의 유골을 훔쳐 달아납니다. 오로지 자기들만의 장례식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치러주기 위해서요.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아요. 기차에서 가출한 게 들킬까봐 긴장하다가 가방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 때문에 로스까지 갈 돈이 부족해져서 직접 돈을 벌어야 하기도 하고, 여자애들을 만나서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냄새나는 곳에서 노숙도 해야 합니다. 거기다 부모님을 비롯한 사람들은 블레이크/씸/케니 이 세 명의 아이들이 친구를 따라 죽으러 간다고 오해하고 실종신고다 방송이다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에서 네 명의 추억들과, 그들 사이에 있었던 말 못할 이야기들, 숨겨두었던 비밀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요.

 

 연극 내내 네 명의 아이들이 참 반짝반짝거렸습니다. 캐릭터 그 자체보다는, 아이들의 관계가 참 눈부셨어요. 이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소중한 어떤 순간, 어떤 시기- 그래서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정말이지 뭐든지 해줄 수 있었던 어떤 특정한 순간들이 퍽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자랄 테고, 그리하여 이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는 어른이 될 테니까요. 누구의 인생에서나 존재하지만 지나가고야 마는 찰나의 시기, 이 아이들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인 겁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거구요. 

 

 갈등이 생겨 싸움을 하는 세 명의 친구들 뒤로 슬며시 나타난 로스가 "우리 넷은 항상 균형이 잘 맞았어요." 하고 말하는데, 그 말이 참 가슴 아프더라구요. 로스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스가 없는 세 아이들은 결코 이전과 같이 모든 것을 함께하고 함께 나누는 사이는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상 다리가 하나 부러진 것처럼, 세 아이들의 관계는 위태위태하게 유지되다가 언젠가는 그냥 주저앉아버리겠구나.. 가끔 만나서 안부를 묻고 로스를 추억하다 술이나 한잔 마시고 헤어지는, 그런 사이가 될 아이들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한때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던 친구들인데,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는데.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씸과 블레이크의 대립장면이었습니다. 유령이 없다는 블레이크에게 씸은 굉장히 화를 내면서 말하죠. 신도 안 믿고, 천국도 지옥도 안 믿고, 죽음 다음의 세계도 안 믿는다면 도대체 왜 여기 있냐구요. 거기에 블레이크는 로스의 유골함을 꺼내서 씸의 눈앞에 들이대면서 항변합니다. 이게 로스라고요. 진짜, 진짜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그 자식이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좀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결국 그 자식은 모른다구요. 왜냐면 로스는... 죽었으니까요. 블레이크가 로스로 향하는 건 건 죽어서 자신들의 곁에 있을 로스의 영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냥.. 로스를 위해서예요.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서죠. 

 

 마지막 장면에서는 제 예상과 빗나간 전개여서 좀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었든, 결국 세 사람이 함께 로스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셋은 함께 로스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갈렸을 듯 합니다. 로스를 로스로 데려오는 일- 이것은 일종의 매듭이잖아요. 블레이크와 케니는 자기 자신 안에서 어찌되었건 로스의 죽음에 매듭을 지었어요. 하지만 씸은 그렇지 못했고, 아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로스에게 화를 내면서 로스의 죽음에 매여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가 참 아팠습니다. "인생을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 로스가 되려고 했을" 아이니까요. 씸에게 좀 더 매듭을 지어줄 시간이나 이야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또 너무 뻔한 극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드네요.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듯 뻔한 듯한? 미묘한 극이었습니다. 시놉만 보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분위기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방향으로 좋았어요. 오정택 배우는 히스토리 보이즈와 퍼디미어스에 이어서 이번에도 제 마음에 드는 극을 선택했네요. 앞으로 '믿고 보는 배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할까 봐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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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 소년들

- 2014.11.15 ~ 2014.11.30

- 화수목금 8:00pm / 토일 3:00pm / 월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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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이상 (2002년 3월 1일 이전 출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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